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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서랍

갱년기, 감정의 폭풍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

by 다시ON언니 2025. 11. 30.

갱년기 감정 기복과 우울감, 나만 힘든 걸까요?
훅 치밀어 오르는 화와 끝없는 후회 속에서, 음악·명상·운동으로 다시 나를 세워가는 한 중년 여성의 솔직한 기록입니다.

낙엽이 가득 쌓인 어두운 가을 숲길을 혼자 걷는 모습, 갱년기 감정의 혼란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의 숲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날들이 찾아온다.

훅, 하고 치밀어 오르는 순간

어제도 그랬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남편이 식탁 위에 물컵을 그냥 두고 간 것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치우고 말았을 일이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슴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훅 치밀어 올랐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말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날카로워지고, 표정은 굳어버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그랬지?’

 

남편의 조심스러운 눈빛을 보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 나는 자주 이렇게 폭발한다.
그리고 매번 후회한다.

붉게 물든 단풍잎 클로즈업 사진, 사소한 일에도 훅 치밀어 오르는 갱년기 감정을 상징하는 이미지
사소한 한마디에도 훅 치밀어 오르는 마음, 나도 낯선 나의 얼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가장 힘든 건 '내가 나답지 않다'는 느낌이다.

20년 넘게 알아온 나 자신이 낯설어진다. 예전의 나는 차분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의 작은 실수쯤은 웃어넘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작은 일에도 감정이 요동친다.

 

가족들 얼굴을 보기가 미안하다.
특히 아이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대할 때,
내가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지 새삼 느껴진다.

 

“엄마, 기분 안 좋아?”

 

아이들이 이렇게 물으면
“아니야,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 감정이 왜 이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변동한다고.
이 호르몬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준다고.

 

쉽게 말해, 감정의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 성격이 나빠진 것도,
내 의지가 약해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
신체적인 변화가 먼저 찾아온 것뿐이라는 설명에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금세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화는 났고,
여전히 후회했고,
여전히 우울했다.

깊어지는 우울의 늪

화를 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건
깊은 우울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죄책감,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
이전의 나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거울을 보면 늙어가는 얼굴이 보인다.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이 모든 변화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게 바로 갱년기 우울증이다.

 

단순히 호르몬 때문만이 아니다.
나다움을 잃어가는 것 같은 상실감,
늙어간다는 두려움,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가을 숲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 갱년기 속에서도 작은 희망과 치유의 빛을 찾는 모습을 표현한 사진
음악을 듣고,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작은 빛 한 줄기.

작은 돌파구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돌파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음악, 명상, 그리고 운동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음악을 튼다.
잔잔한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틀어놓고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처음에는 그 시간에도 잡념이 가득했다.
‘오늘 뭐 해야 하지’,
‘어제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계속했다.
호흡에만 집중해 보는 짧은 명상도 함께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10분이라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만큼은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잠시 멈추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운동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억지로 나갔다.
몸도 무겁고, 신발 끈을 묶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가 걸어보니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땀이 나면서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았다.

특히 화났던 날은 더 오래, 더 빠르게 걸었다.
발바닥으로 땅을 쿵쿵 딛고 걷다 보면
분노가 발바닥을 통해
땅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화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고,
대신
“아까는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온다.

몸을 움직이니까,
머리와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것들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지금도 화날 때는 나고,
우울할 때는 우울하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분명 조금 나아졌다.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아, 지금 내가 많이 흥분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예전처럼 곧바로 폭발하기보다는
조금은, 정말 조금이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잔잔한 호수에 가을 숲이 비치는 모습, 운동과 명상으로 갱년기 감정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이미지
몸을 움직이고 나면, 마음도 이렇게 조금씩 잔잔해지는 날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 수많은 여성들이 이 시기를 통과하고 있고, 통과해왔다는 것.

갱년기는 끝이 아니다. 변화의 시기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초라한 게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들은 이해해주었다. "엄마, 괜찮아요. 우리가 도와줄게요"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빛을 머금은 가을 단풍잎 클로즈업, 갱년기를 지나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뜻하게 표현한 사진
갱년기는 끝이 아니라, 조금 더 다채로워지는 나의 또 다른 계절일지도 모른다.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

여전히 어렵다. 오늘도 화가 났고, 오늘도 우울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도 나의 일부라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을 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지금 힘들어도 괜찮다고.

화를 내도, 우울해도, 그게 당신의 전부가 아니라고.

 

우리는 모두 변화 속에서 우리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비록 힘들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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